고층 아파트는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정전이나 단수가 길어지면 변기가 가장 먼저 멈추고, 하수관이 손상됐다면 비축수로 내리는 것도 위험하다. 간이화장실은 변기에 비닐 커버와 오물 봉투를 씌우고 용변 후 응고제로 굳혀 밀봉한 뒤 생활 쓰레기와 분리 보관하는 방식으로 쓴다. 한 사람이 하루 약 5회를 쓴다는 기준으로 가구원 수와 기간에 맞춰 수량을 계산하고, 응고제는 밀봉해 건조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재난 대비를 두고 '사흘치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늘고 있다. 영국처럼 2주치 비축을 권하는 나라도 있다. 그런데 물과 먹거리를 챙기면서도 빠뜨리기 쉬운 것이 화장실이다. 특히 아파트는 단수나 정전이 조금만 길어져도 변기가 가장 먼저 무용지물이 된다.
핵심부터 말하면, 아파트에서 재난 시 화장실 문제는 '물을 아껴 내리면 된다'로 해결되지 않는다. 미리 간이화장실을 갖춰 두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대비책이다.

byunghyun lee
이유는 단순하다. 변기는 물로 오물을 흘려보내는데, 단수가 되면 내릴 물 자체가 없다. 문제는 정전일 때도 비슷하게 벌어진다는 점이다. 고층 아파트는 대부분 펌프로 물을 위층까지 끌어올린다. 전기가 끊기면 펌프가 멈추고, 높은 층일수록 수도와 변기 탱크에 물이 차지 않는다. 물탱크 수압만으로 작동하는 중력식 변기와 달리, 펌프에 의존하는 건물은 정전과 함께 변기도 멈추는 셈이다.
지진 같은 재해로 하수관이 손상됐다면 더 조심해야 한다. 비축해 둔 물로 억지로 내렸다가는 아래층으로 역류하거나 새어 나올 수 있다. 하수관이 멀쩡하고 받아둔 물이 있을 때만 물로 내리는 방식이 가능하고, 펌프식이거나 배관 손상이 의심되면 봉투를 쓰는 간이화장실로 돌려야 한다.
준비물은 단출하다. 변기에 씌울 비닐 커버, 오물을 담을 두꺼운 검은 봉투, 냄새와 수분을 잡는 응고제, 그리고 소독제다. 응고제가 없다면 고양이 모래나 잘게 자른 신문지가 흡수재를 대신한다.
쓰는 순서는 일본 지자체 안내가 참고가 된다.
변기 자체를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튼튼한 양동이에 두꺼운 봉투를 깔아 같은 방식으로 쓸 수 있다. 다만 소독에 쓰는 염소계 제품은 마른 상태로 다루면 위험할 수 있으니 사용법을 확인해야 한다.
필요량은 가구원 수와 버틸 기간으로 계산한다. 일본 자료는 한 사람이 하루 약 5회 화장실을 쓴다고 보고 일주일치 준비를 권한다. 이 기준이면 1인당 일주일에 약 35개가 필요하다. 사흘을 기준으로 잡으면 1인 15개 정도다.
| 가구원 | 3일분 | 1주일분 |
|---|---|---|
| 1인 | 15개 | 35개 |
| 2인 | 30개 | 70개 |
| 4인 | 60개 | 140개 |
숫자가 많아 보이지만, 같은 일본 조사에서 일주일치를 실제로 갖춘 가구는 12.7%에 그쳤다. 대부분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보관에도 요령이 있다. 응고제는 습기를 먹으면 미리 굳어버릴 수 있으니 밀봉해 건조한 곳에 두고 유효기간을 확인한다. 봉투는 찢어질 때를 대비해 넉넉히 두고, 현관이나 신발장처럼 급할 때 바로 꺼낼 수 있는 자리에 모아두는 편이 낫다.
지진 걱정이 덜한 지역이라도 태풍과 정전, 단수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일주일치를 단번에 갖추기 부담스럽다면, 우선 3일분과 응고제부터 신발장에 넣어두는 것이 현실적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