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군이 9월 9일 2차 홍수 우려 등 안전 문제로 수색·구조를 종료하면서 한국 긴급구호대 1진 44명이 철수했다. 해외 구호대의 활동 종료는 파견국이 아니라 피해국이 정하기 때문에, 한국은 독자적으로 수색을 이어갈 수 없었다. 남은 한국인 실종자 9명 수색은 2진의 드론 수색과 경찰청·국과수의 DNA 신원확인으로 방식을 바꿔 계속되므로, 이후 진행은 네팔 당국의 복구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보낸 해외긴급구호대(KDRT) 1진 44명이 활동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이규호 외교부 개발협력국장을 대장으로 외교부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방청 인력으로 꾸려진 이 팀은 9월 1일 밤 군 수송기로 출발해 이튿날부터 바그마티주 바타르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수색에 들어갔다.
철수의 직접적인 계기는 네팔군의 결정이었다. 현지 시간 9월 9일, 네팔 당국은 사고 발생 약 2주 만에 대응 기조를 수색·구조에서 재건·복구로 전환했다. 2차 홍수 우려 등 안전 문제가 이유였다. 네팔군이 현장 인력과 헬기 상당수를 빼면서, 한국 구호대가 독자적으로 수색을 이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결국 민관합동 해외긴급구호협의회 의결에 따라 수색이 중단됐다.
가족들은 이 결정에 반발했다. 실종자 가족 3명은 9월 9일 카트만두에서 성명을 내고 "일방적 수색 종료와 조기 철수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직원들의 대피 경로와 생존자 증언이 확보된 구역에 대한 실질적인 지상 수색은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진의 수색은 헬기 7회, 드론 14회, 터널 9회, 도보 2회 등 32차례에 걸쳐 진행됐지만, 험한 산악 지형에서 도보 지상 수색은 2회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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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재난 구호대의 활동이 언제 끝나는지는 파견국이 혼자 정하지 못한다. 재난이 일어난 나라가 현장 지휘와 조율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한국 구호대는 "네팔 정부와 군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움직였고, 네팔군이 철수하자 활동 공간 자체가 사라졌다.
전환의 판단 기준은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생존 가능성이다. 매몰이나 고립 상황에서 구조로 사람을 살릴 확률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떨어지고, 이 지점을 넘어서면 대응은 구조에서 시신 수습과 복구로 넘어간다. 다른 하나는 대원의 안전이다. 이번 네팔처럼 2차 붕괴나 추가 홍수 위험이 남아 있으면, 피해국은 구조대까지 희생될 수 있는 상황을 피하려 활동을 접는다.
문제는 이 두 기준이 남은 가족의 기대와 어긋날 때다. 당국은 전체 위험과 확률로 판단하지만, 가족에게는 특정 구역 한 곳을 끝까지 뒤지는 일이 남는다. 이번 논란의 핵심도 바로 그 간극에 있다.
한국인 실종자는 모두 9명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소속 6명과 남동발전 소속 3명으로, 어퍼트리슐리-1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연락이 끊겼다. 1진 철수가 곧 수색 종료는 아니다.
정부는 2진 8명을 9월 11일 추가로 보냈다. 2진의 임무는 구조가 아니라 재건·복구 지원과 연락두절자 수색 쪽에 맞춰져 있다. 산악 지형과 붕괴 위험 탓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는 방식보다는, 네팔 정부·군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드론 수색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재민 대피소와 병원을 돌며 구호 물품을 전달하고 현지 의료 수요를 조사하는 일도 함께 맡았다.
수색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인력이 네팔 중앙법과학연구소에 투입돼, 신속 DNA 분석기로 수습된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을 지원한다. 살아 있는 사람을 찾는 단계에서 신원을 가리는 단계로 무게 중심이 옮겨간 셈이다.
네팔 전체 피해는 사망 1,400명 이상, 실종 5,600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물적 피해만 약 2조4,100억 원, 경제적 손실까지 더하면 3조6,000억 원 규모다. 재건에는 약 6조3,00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규모가 이 정도인 재난에서 개별 실종자 수색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는, 결국 네팔 당국의 복구 일정과 추가 위험 판단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