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태풍들은 중국과 일본으로 갈렸고 한국에 상륙한 태풍은 없었는데, 이들을 밀어낸 건 폭염을 만든 북태평양고기압이었다. 뜨거워진 바다가 이 고기압을 키우고 그 가장자리 기압골이 태풍을 한반도 밖으로 돌리는 방패를 만든 것으로, 지금의 배치는 일시적이다. 앞으로 태풍이 한국을 향할지는 발생 개수가 아니라 발생 위치와 기압계 변화, 특히 가을까지 이어지는 높은 해수면 온도를 봐야 한다.

올여름 태풍 소식은 늘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끝났다. 실제 경로를 보면 그렇게 느낄 만하다. 7월 제9호 바비는 중국 저장성에, 마이삭은 광시, 노을은 광둥에 상륙했다. 8월 들어 발생한 돌핀은 중국 내륙에서 소멸했고, 찬홈은 일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 육지에 상륙한 태풍은 없었다.
특히 8월 초에는 돌핀, 찬홈, 페이러우 세 개의 태풍이 동시에 떠 있었는데도 결과는 같았다. 돌핀은 중국으로, 찬홈은 일본으로, 페이러우는 태평양으로 유턴해 흩어졌다. 한반도에 그나마 가장 가까이 온 것은 바비였지만, 이마저 중국에 상륙해 약해진 뒤 백령도 서쪽 해상에서 온대저기압으로 바뀐 상태였다. 태풍의 모습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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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같이 비켜갔을까. 답은 올여름 내내 우리를 괴롭힌 폭염과 같은 뿌리에 있다. 폭염의 원인인 북태평양고기압이, 동시에 태풍을 막는 거대한 방패로 작동했다.
세계일보에 인용된 기상 분석을 보면 구조는 이렇다. 이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저기압과 기압골이 만들어지면서, 북상하려는 태풍을 한반도 바깥으로 밀어내는 바람길이 생겼다. 태풍은 고기압 덩어리를 뚫지 못하고 그 테두리를 따라 중국이나 일본 쪽으로 휘어 나간 것이다.
이 방패를 더 단단하게 만든 것이 뜨거운 바다다. 올여름 동아시아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크게 높았고, 데워진 바다가 대기 하층을 가열하면서 고기압 세력을 한층 견고하게 굳혔다. 폭염과 태풍 회피는 별개의 우연이 아니라 같은 원인의 두 얼굴인 셈이다.
태풍이 안 온다는 건 피해가 없다는 뜻이라 반가울 수 있다. 다만 가뭄이나 물 부족에 시달리는 지역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여름 태풍은 큰비를 뿌려 저수지와 하천을 채우는 중요한 물 공급원이기도 하다.
올여름처럼 태풍이 계속 비켜가면, 그 강수량이 통째로 빠지면서 폭염과 물 부족이 더 길게 이어질 수 있다. 태풍이 오지 않는 여름은 재해를 피하는 대신, 마른 날씨를 오래 끌고 가는 여름이기도 하다는 점은 짚어둘 만하다.
그렇다면 이 흐름이 가을까지 계속될까.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걷어낼 필요가 있다. 태풍이 몇 개 생기느냐는 한국의 안전과 큰 상관이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태풍이 어디에서 생겨 어느 기압 배치를 만나느냐다.
전문가들이 주시하라고 짚는 지표도 발생 개수가 아니라 발생 위치와 주변 기압계의 변화다. 지금의 방패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배치다. 고기압이 물러나거나 위치가 바뀌어 한반도로 향하는 바람길이 열리는 순간, 상황은 뒤집힐 수 있다.
특히 가을이 변수다. 기후 변화로 늦가을까지 해수면 온도가 높게 유지되는 추세여서, 바람길만 열리면 힘을 유지한 태풍이 곧장 한반도로 들어올 여지가 있다. 앞으로 태풍 예보를 볼 때는 개수보다 발생 위치, 그리고 북태평양고기압이 언제 물러서는지를 함께 확인하는 편이 판단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