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 네팔과 티베트를 덮친 대홍수는 비가 아니라 히말라야 고산의 빙하와 암반이 통째로 무너져 내린 산사태에서 시작됐다. 5000m급 빙하도 영구동토도 없는 한국에서는 이런 빙하 붕괴형 재난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교훈까지 남의 일은 아니다. 한국의 실제 위험은 집중호우가 부르는 돌발홍수와 도시침수, 산사태이며 강우량뿐 아니라 산사태·급경사지 위험 정보를 함께 봐야 한다.

네팔 참사에서 가장 낯선 대목은 사고 직전 그 지역에 큰비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방아쇠는 비가 아니라 이상고온이었다.
2026년 8월 26일 오전 8시 37분, 랑탕리룽산 북쪽 해발 5000m 지점에서 빙하가 암석과 함께 1000m 넘게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처음엔 지진으로 알려졌지만, 미국 지질조사국은 이 진동이 거대한 빙하와 암반이 붕괴하며 생긴 지진파였다고 분석했다. 온난화로 영구동토의 얼음이 녹으면 바위를 붙잡던 '접착제'가 풀리고, 사면은 비 없이도 스스로 무너진다.
흔히 말하는 '빙하호 붕괴(GLOF)'와도 결이 다르다. GLOF는 이미 있던 빙하호의 둑이 터지는 현상이지만, 이번엔 호수가 터진 게 아니라 얼음과 바위 덩어리가 통째로 쏟아져 내린 산사태였다. 잔해가 강을 가로막아 임시 자연댐, 이른바 언색호를 만들었고 이것이 다시 터지면서 물이 밀려 내려갔다. 트리슐리강 갈치 관측소에서는 수위가 30분 만에 9m 뛰었다. 9월 초 기준 네팔에서만 사망자가 1000명에 육박하고 실종자는 5000명 안팎으로 집계됐다. 한국인도 두산에너빌리티 6명, 한국남동발전 3명 등 9명이 실종됐다.

Connor Scott McManus
이 재난의 재료는 고산 빙하와 만년설, 그리고 영구동토다. 히말라야 5000m대에서나 갖춰지는 조건이다.
한국에는 이 재료 자체가 없다. 남한 최고봉 한라산이 1947m, 북한 백두산이 2744m로 히말라야와는 높이 자체가 다르고, 만년 빙하도 터질 빙하호도 영구동토층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너질 빙하가 없으니 빙하 붕괴형 재난은 원천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서 '빙하 홍수'를 걱정하는 것은 번지수가 틀렸다. 대비해야 할 물난리는 훨씬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다.
국내 홍수는 보통 하천홍수, 도시홍수, 돌발홍수, 해안홍수로 나뉜다. 이 가운데 산악 지형과 맞물린 돌발홍수가 네팔 사례와 가장 닮은 위험이다.
돌발홍수는 급경사 산지에 집중호우가 쏟아질 때 좁은 지역에서 짧은 시간에 터진다. 상류의 작은 댐이 무너지거나 산사태가 겹치면 피해가 커진다. 특히 한국 산지는 풍화된 화강암과 편마암이 많아 겉흙이 얇고 물을 머금는 힘이 약하다. 폭우가 오면 토사와 바위가 한꺼번에 쓸려 내려오는 토석류로 이어지기 쉽다. 도시에서는 아스팔트로 덮인 불투수면이 넓어지고 배수가 밀리면서 저지대와 반지하가 잠긴다.
네팔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강우량이 0mm인 날에도 재난은 시작될 수 있고, 비만 재는 경보는 급경사지가 무너지는 신호를 놓친다. 한국에서도 산사태가 계곡을 막았다가 터지는 2차 위험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비는 어렵지 않다. 홍수위험지도 정보시스템(floodmap.go.kr)에서 집 주변 침수 위험을 확인하고, 장마철에는 강우 예보와 함께 산사태 위험 예보·경보를 챙겨 보면 된다. 급경사지 붕괴위험지역에 살거나 저지대·반지하에 산다면, 비가 세차게 내리기 전에 대피 경로부터 정해 두는 편이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