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8월 23일)가 지났지만 서울에는 폭염주의보, 대구·포항에는 폭염경보가 내려진 채 8월 하순까지 33도 안팎의 더위가 이어질 전망이다. 기상청 통계로 보면 폭염일수와 열대야가 지난 10년 새 두세 배로 늘고 더위 종료도 열흘 넘게 늦어져, 처서에 더위가 꺾인다는 기대는 이미 흔들렸다. 더위가 언제 끝날지는 절기가 아니라 북태평양고기압의 위치와 아침 최저기온 같은 지표로 가늠하는 편이 정확하다.
처서는 24절기 중 열네 번째로, 한자 뜻 그대로 '더위가 물러난다'는 절기다. 올해 처서는 8월 23일이었다. 그런데 처서를 지난 지금 서울에는 폭염주의보, 대구와 포항에는 한 단계 높은 폭염경보가 내려져 있다.
기상청은 호우를 몰고 왔던 기압계가 물러난 뒤 덥고 습한 고기압이 다시 세력을 키우면서 8월 하순까지 33도 안팎의 더위가 이어지겠다고 본다. 절기가 바뀌었다고 공기가 바로 식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Rodion Kutsaiev
예전에는 처서 무렵이면 아침저녁이 선선해지고 낮 기온도 30도 아래로 내려간다는 '처서 매직'이 통했다. 지금은 숫자가 그 기대를 배신한다.
기상청 분석을 보면 전국 평균 폭염일수는 과거 10년(1973~1982년) 8.3일에서 최근 10년(2016~2025년) 18.3일로 2.2배가 됐다. 열대야는 4.1일에서 12.2일로 약 세 배 늘었고, 지난해에는 24.5일로 관측 이래 가장 많았다. 더위의 양만 는 게 아니라 끝나는 시점도 밀렸다. 폭염 종료는 약 열흘, 열대야 종료는 10~20일 늦어졌고 남해안과 제주는 9월 상순까지 열대야가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지난해 서울은 처서 아침 최저기온이 27.4도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처서에 더위가 꺾인다는 감각이 최근 10년 사이 실제로 무너진 셈이다.
늦더위가 길어지는 데는 크게 두 가지가 작용한다. 하나는 고기압이다. 북태평양고기압이 예년보다 일찍, 넓게 확장하면서 맑고 뜨거운 날이 이어지고, 낮에 달궈진 지표의 열이 습한 밤공기 탓에 빠져나가지 못해 열대야로 남는다.
다른 하나는 바다다. 여름 내내 햇볕을 받은 바다는 육지보다 천천히 식어서 8월 하순까지도 수온이 높게 유지된다. 이 따뜻한 바다가 대기에 열과 수증기를 계속 공급하면 밤 기온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는다. 고기압과 높은 수온이 겹치면 늦더위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정확한 종료일은 아무도 단정하지 못한다. 더위가 꺾이는 시점은 달력이 아니라 우리나라 주변 기압계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예보를 볼 때 스스로 가늠할 수 있는 지표는 몇 가지 있다.
첫째는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 위치와 기압골의 이동 속도다. 예보에서 고기압이 남쪽으로 물러나고 북쪽 기압골이 내려온다는 표현이 나오면 더위가 한풀 꺾일 신호다. 둘째는 아침 최저기온이다. 이 값이 25도 아래로 내려가면 열대야가 풀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셋째는 낮 최고기온이 평년 수준으로 돌아오는지다. 지금 예보는 낮 27~34도로 평년(27~30도)보다 높은데, 이 수치가 평년대로 내려오면 한낮 더위도 누그러진다. 넷째로 최고체감온도가 33도 밑으로 안정되면 폭염특보 발효 가능성이 낮아진다.
요약하면, '처서가 지났으니 곧 끝나겠지'라는 기대 대신 이 네 지표가 실제로 꺾이는지를 확인하는 편이 훨씬 믿을 만하다. 당장은 이번 주까지 더위와 열대야에 맞춘 대비를 유지하는 게 현실적이다.